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든사람들

  1,467개의 별이 가로 1미터 세로2미터 가량의 돌에 새겨진 이 천문도는 조선 왕조를 개창한 직후 1395넌에 만들어졌다.  이성계(李成桂)는 새 왕조를 시작하면서 자신이 하늘의 명, 즉 천명(天命)을 받아 새 나라를 세웠다고 자랑하기 위해 이 천문도를 정성들여 만들었다.  요즘은 투표란 것을 해서 한 표라도 더 받은 사람이 대권을 쥐게 되지만, 옛날이야 어디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나? 우선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고는 이런 저런 수단을 동원해 집권을 합리화하기 마련이었다.  이 천문도도 말하자면 이성계 집권의 합리화 수단으로 등장한 셈이다.

  중국에는 이 보다 약간 더 오래된 전천 석각(石刻, 돌에 새긴) 천문도가 하나 있어서 우리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돌 천문도로 만들어 준다.  하여간 이 자랑스러운 문화재를 만든 사람으로는 12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가운데도 세 이름이 특히 두드러지는데, 글을 쓴 권근(權近 1352~1409), 천문계산을 한 류방택(柳方澤 1320~1402), 그리고 글씨를 쓴 설경수(偰慶壽)가 그들이다.  이들 이름은 이 천문도의 설명문 끝에 나란히 새겨져 있다.  각각 ‘임금의 뜻을 받들어’(奉敎) 권근은 글을 짓고(記), 류방택은 천문계산을 했으며(推算), 설경수는 글씨를 썼다(書)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세 이름 아래에는 ‘서운관’(書雲觀)이란 제목 아래 다시 9명의 명단이 덧붙어져 있다.  이들 9명은 당시 천문기관이던 서운관 소속으로 역시 이 천문도를 만드는데 기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 이름을 조사해 보았으나, 별로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이들 12명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천문도 제작에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3명과 당시 서원관 관련자로 추가 명단에 오른 9명을 차례로 조사해 보자.


1. 권근(權近 1352~1409) - 한국 영사상의 대표적 문인 학자였던 그에게는 문집 ‘양촌집(陽村集)’이 남아있고, 이것은 국역판 5권으로 출간되어 있다.  그 밖에도 권근의 글은 많이 인용된다. 이 천문도를 설명하는 글을 썼지만, 실제로 그는 천문학자는 아니었다.

2. 류방택(柳方澤 1320~1402) - 천문계산을 담당한 당시의 대표적 천문학자. 논의의 중심이 되어 뒤에 집중적으로 설명될 것이다.

3. 偰慶壽(설경수 ?~?) - 1358년 홍건적의 난을 피해 그의 아버지인 위구르 사람 설손(偰遜)이 원나라에서 귀화, 그 장남 설장수(偰長壽 1341~1399)가 경주를 본관으로 하사받아 ‘경주 설씨’가 시작되었다.  형은 대학자로 이름을 남겼고, 아우 설경수는 유명한 서예가였으나, 둘 다 천문학자는 아니다.  형은 1392년 정몽주가 살해당했을 때 그 일당이라 지목되어 유배 간 기록도 있다.  설경수의 아들 설순(偰循)은 1408년 문과에 급제했다.


그 다음 이름이 올라있는 당시 서운관 소속 인원들은 다음과 같다.

4. 권중화(權仲和 1322~1408) -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의학자로 태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  1393년 (태조2) 영서운관사(領書雲觀事)를 겸임한 기록을 보아 이 관직 때문에 그의 이름이 서운관 관련사 9명 가운데 첫째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고위직을 두루 지냈고, ‘향약간이방(鄕藥簡易方)’, ‘신편집성마우의방(新編集成馬牛醫方)’을 편집한 의학자로 지리․복서(卜筮)에 통달하고, 전서(篆書)에도 능했다는 평가지만 역시 천문학자는 아니었다.

5. 최융(崔融) - 없음

6. 노을준(盧乙俊) - 없음

7. 윤인룡(尹仁龍) - 없음

8. 지거원(池巨源) - 없음 : 이름이 지신원(池臣源) ?

9. 김퇴(金堆) - 없음

10. 전윤권(田潤權) - 없음

11. 김자수(金自綬) - 없음 : 김자수(金自粹)는 아닐 듯.

12. 김후(金候) - 없음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류방택의 직함이 가정대부(嘉靖大夫) 검교(檢校) 중추원(中樞院)부사(副使) 겸(兼)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라 되어 있다.  당시 그의 관계(官階)가 아주 높아서 종2품 수준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류방택이 천문 계산의 총책임자란 것은 이 석각천문도에 새겨진 글로 충분히 알 수 있으나, 그 밖의 11명의 직책은 분명하지가 않다.  물론 처음에 나오는 권근은 글을 쓴 문필가였고, 세 번째 나오는 설경수는 그의 형 설장수(偰長壽)와 함께 원나라에서 고려로 망명한 당대 유명한 서예가였으니, 둘 다 천문학과는 직접 관연은 없다.  그렇다면 나머지 9명 가운데 누구누구가 천문 계산에서 류방택을 도와준 인물이었던 지를 연구해 볼 일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상세한 내용을 알기는 어렵다.  다만 권중화(權仲和 1322~1408)는 1393(태조2)년에 서운관 영사(領事)를 겸하고 있어서, 자동적으로 이 명단에 이름을 넣게 되었을 것으모 보인다.  그렇다고 그가 특별히 천문학 전문가는 아니었다.  따라서 류방택과 함께 천문 계산을 맡았던 인물은 그 나머지 8명 가운데 몇 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연구가 쌓이면 조금은 더 밝혀지는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담당 천문학자는 류방택 한사람을 꼽을 수 있을 따름이다.